고해성사

2021.09.22 나는 도박 중독자다

히피로즈 2021. 9. 22. 13:06

과거의 나는 아름다움을 추구하는 사람이었다.
배고파도 예술을 하고 싶은 사람이었다.
돈 없어도 행복한 사람이었다.

대학을 졸업하고, 비자를 위해, 먹고 살기 위해 취업을 했다. 오랜 근무시간에 비해 급여는 좋지 않았다.
딱 십만엔만 더 받으면 좋겠다고 생각했다.

사회생활을 하면서 fx라는 존재를 알았다.
그냥 있는 줄만 알았다.
난 당시 가상화폐로 천만원정도 벌고 나왔다.
20만원으로 시작했는데 우연히 들어간 ico가 대박을 쳐서, 20만원이 2천만원이 된 거였다.
천만원 빼서 생활비로 쓰고 천만원은 여기저기 분산투자했다가 폭락과 함께 접었다.

그리고 어느정도 안정된 직장에 취직했다.
급여도 올랐고 사회초년생일 때 그렇게 원했던 월급을 받게 되었다. 그 때 처음으로 해외 선물에 손을 댔다.

처음엔 호기심이었다.
가상화폐로 벌었다는 자신감도 있었다.

시작은 2만엔. 레버리지 500배.
단돈 20만원으로 1억을 굴리는 자산가가 되었다.

나스닥을 사고 일주일동안 잊고 지냈다.
문득 생각이 나 열어보니 이익금 15만엔. 7배가 불어있었다.
그렇게 몇 번을 사고 팔다보니 45만엔까지 늘었고.
30만엔을 출금해 10만엔이 넘는 신발을 샀다.
그 경험이 내겐 3년 내내 독이었다.

30만엔을 잃는 건 순식간이었고, 되찾기 위해 더 큰 금액을, 또 되찾기 위해 더 큰 금액을 넣었다.
어느 순간부터 나는 매매 중독자가 되어있었고, 차트를 보지 않으면, 포지션을 잡지 않으면 불안해지는 증상에 시달렸다.
로스컷을 당할때 아드레날린이 솟구치는 이상한 현상에 중독되어 있었다.

그러면서도 한 편, 이렇게 계속 해 나아가다보면 실력도 늘어서 여태 입은 손해를 만회할 수 있을 거라 믿었다.

빚이 늘어가면서는 “빚 이천있는 놈이나, 빚 사천있는 놈이나 똑같지 뭐…” 라는 생각이 들었다.

“다들 집 사면서 대출 받잖아. 차 타면서 대출 받잖아.” 라는 자기합리를 계속 했다.

더 나아가니 “이번에도 안 되면 그냥 죽지 뭐…” 라는 생각도 들었다.

그렇게 나는 2021년 9월21일 한계를 맞았다.

각종 금융기관에서 400만엔
주위 사람들에게 빌린돈 300만엔

계좌에 남은 전재산 556엔

죽고 싶었다.
이젠 아무도 돈을 빌려주지 않았다.
아니 빌려달라고 말도 못했다.
딱 10만엔만 더 있으면 한 번에 만회 할 수 있다는 생각이 들었다. 그 때 내가 도박 중독이라는 걸 깨달았다.
타짜에 나오던, 쓰레기 도박중독자가 나라는 걸 알았다.

담배를 피우며 베란다에서 뛰어 내리고 싶은 충동이 몇번이고 들었다.

하지만 난 살고 싶었다.
살고 싶지만 혼자선 자신이 없었다. 내 스스로를 믿을 수가 없었다.

결국 소중한 사람에게 모든 걸 털어놓고 도움을 청했다.
만약 그 때 그 사람이 날 외면했다면 난 정말 죽었을지도 모른다.

700만엔. 한화로는 7천만원.
목숨과 저울질하기엔 별 볼일 없는 금액일지 모른다.
하지만 당사자가 되고나서, 금액이 문제가 아니라는 걸 알았다.
기한 지난 청구서 한 통이 숨통을 조인다.
과거의 내가 뱉은 무책임한 한 마디 한 마디가, 마치 올가미처럼 얽혀 옭아맨다.

마지막으로 얻은 기회.

빚을 청산하는 날까지의 기록을 이 블로그에 남겨나가겠다.
목표는 2년.

쉽지 않을 거라는 걸 안다.
힘들 때도 고민될 때도 기록을 남겨나가겠다.

소중한 걸 지키기 위해서 나는 변해야 한다.
살아남으려면 변해야 한다.

항상 새기자.